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.
최악의 상황 이후엔 다들 이 말이고, 이유는 두 가지다.
들키면 안 되거나, 정말 기억이 나지 않거나.
사실 나조차도 그때 상황이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.
단지 그 새벽에도 괴롭힘을 받았거나,
그냥 도질병이거나겠지 하고.
아무튼 그 밤은 심했던 것이다. (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.)
그래서, 병동을 나왔다.
그러고는 달렸다.
들리는 소리는 내가 숨 쉬는 소리와, 바람 소리, 그리고 어쩌면 달이 비웃는 소리였을까.
얼마나 달렸을까. 그리고 무슨 생각이었을까.
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.
기억의 조각을 더듬어 말하자면,
절벽.
그리고 그 절벽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나였다.
그다음은...
"야, 씨발!!!!"
그 외침에 좀 정신이 들었다. 바로 보인 건 바닥은 보이지 않고, 공중에 둥 뜬 내 다리였다.
"으, 으아악!!!" 놀라서인지 발을 버둥이고, 그제야 팔을 누군가 잡고 있단 걸 알아챘다. 올려다본 그곳엔, 인상을 찌푼 유람이 있었다.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오른팔을 붙잡고 있었다.
"버둥거리지 마!!!! 존나 힘드니깐!!" 화난 목소리로 악을 쓰는 그의 목소리에 놀랐고, 발버둥도 멈췄다.
"하... 정신 차린 거 같으니까, 너도 힘 좀 써봐." 그 말이 끝나고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곤 유람은 날 끌어올린다. 성격이 급한 건지, 일단은 맞춰서 절벽을 바닥처럼 발로 끌어 올라가려 한다. 그리고 그때서야 또 하나 알아챈다. 내가 맨발이란 걸.
.
.
.
".. 좆같은 거!!"
어찌저찌, 올라오긴 했다.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, 유람은 자신의 왼팔을 만진다. 자세히 보니, 왼팔 소매엔 피가 묻어 있다.
"씨발롬. 왜 갑자기 안 하던 지랄을 하는 거야? 제대로 돌았냐?"
이쯤 되니 욕에는 내성이 생겼지만, 여전히 신기하긴 하다. 일단은 그의 질문에 난 대답을 한다.
"... 몰라, 기억 안 나."
"그러시겠지요. 기억장애."
"꼽주지 마. 다시 떨어져 버릴 거야."
조금 험하게 말한 자신에게 놀랐지만, 그 말에 놀란 유람을 보고 한번 더 놀란다.
"... 씨발." 그러곤 더 이상 유람은 말하지 않는다. 인상을 찌푸린 채 담배를 꺼낸다. 그러곤 입에 물고 라이터로 담배를 지진다.
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기도 하다.
날 구한 사람이 존재한 것도. 뭐, 존재할 순 있지만, 그게 유람인 게 참 이상하다.
유람을 흘끗 봤으나, 딱히 물어보기엔 현상태론 좀 어수선하다. 언젠간...
유람은 방금의 그 절벽 너머를 보고 있다.
하늘이 탁 트이고, 밤하늘엔 별들이 수없이 많다. 과거 서울의 밤하늘에선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많은. 달조차 큰데도, 별들은 서로서로 뽐내며 밤하늘을 비춘다.
하늘을 감상하다 보니, 어느새 유람은 담배를 밟아 끄고 있다.
그리고 유람은 입을 연다.
"백 하얀."
춤추자.
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, 그리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을 때 유람은 내 손목을 잡고, 한 손을 그의 어깨에 올린다. 그리고 나머지 그의 왼손은 내 오른쪽 옆구리를 감싼다. 그리고 자신 쪽으로 날 좀 끈다.
"대충 짝으로 운동하는 거였나. 그때 왈츠 기억해?"
"... 응." 그야 맨 첫날, 언니랑 같이 했으니깐.
"복습인 거야. 뭐, 대충 그런 걸로 쳐."
그리고 아무 반주 없이, 유람의 리드로 춤은 시작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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